오늘 리뷰할 책은, 무려 1963년에 출간되었던 고전.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 이론철학가 중 한 사람인 '한나 아렌트'가 쓴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이다.


정치, 역사, 철학, 종교 분야를 모두 아우르는 인문철학도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이 책은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했던 전쟁,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나치독일에 대한 이야기이다. 정확히는, 유대인 학살의 핵심 책임자였던 아이히만이 종전 후 아르헨티나에서 체포되고 예루살렘으로 압송되어 재판을 받을 때, 한나 아렌트가 재판현장에 참관하여 그 재판에 대해 보고한 내용이다. 404페이지에 달하는 묵직한 두께의 책이지만, 그 안의 내용은 그 이상으로 이해하기 어렵고, 문장을 다시 곱씹으며 해석해야 할 필요성을 요구하고 있다. 마치, 마블의 엔드 게임 이후 등장한 수많은 마블작들을 보는 대중들의 기분이랄까. 그걸 온전히 이해하고 즐기기 위해서는, 다른 배경지식을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하는 그런 분위기의 책이다.
이 책, 사실 읽을 생각 없었어요.
사실 이 책은 우리 독서모임 멤버들 중 그 누구도 추천한 책은 아니었다. 독서 모임 지원서를 받기 위해 계획서를 써야 했고, 독서 리스트업을 하던 과정에서 팀원이 우리학교 필독서 리스트를 랜덤으로 돌려보자는 의견이 나와 그렇게 결정된 책이었다. 처음에는 제목만 보고, 종교적인 책인가...? 이 책으로 정말 토론을 진행해도 되는지 모두 고민했을 것이다. 아무래도, 종교는 민감한 문제니까. 하지만 일단 뽑혔으니 계획서엔 넣어놓자는 의견이 다수였고, 그렇게 계획서를 작성하고 몇 달 뒤 우리는 이 책을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책을 읽기 전에 정보를 찾아봤을 때 전문가들의 평가에는 '어렵다', '여러번 읽어야 이해할 수 있는 책', '읽다가 포기한 책' 등이 참 많았다. 참 웃기게도 오기가 생겼다. 내가 마치 한나 아렌트가 된 것처럼, 이 책을 이해해야겠다는, 이해하고 말겠다는 그런 마음이었다. 작가가 된 것처럼 자료조사를 하면서 책에 대한 모든 사전지식을 훑어갔다. 그런 기분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재밌고, 설레고, 아직 내가 알아내지 못한 그 세계에 대한 탐험심. 마치 소설을 쓰기 전에 준비해나가는 내 모습이 데자뷰처럼 떠올랐다. 이제 거의 1년이 되어가는, 마지막으로 소설을 써내려갔던 내 모습 말이다.
그래서 이 책에서 어떤 내용이 나오나요?
일단, 이 책을 읽기 전에 알고 있어야 할 내용은 크게, 나치즘(히틀러), 전체주의, 한나 아렌트, 아돌프 아이히만이 저지른 범죄(아이히만 입장에서는 단지 업무였을 뿐이겠지만..) 이렇게 4가지이다.
위 4가지 키워드에 대해 잘 모르겠다면, 일단 나무위키부터 정독해보자. 허위나 과장된 정보도 있지만, 도화지에서 시작했을 때보다 훨씬 가닥을 잡고, 그 위에 이제 어떤 그림을 그릴지 대략적으로 떠올릴 수 있다. 그다음은 뉴스 기사, 브런치와 같은 아티클을 잔뜩 읽으며 조금씩 그 키워드와 관련된 단어와 문장들에 물들여 나간다. 빠른 습득을 원한다면, 유튜브를 찾아가자. 너진똑, 지식해적단, 조승연... ebs에 맞먹는 고퀄리티 교양 유튭 채널이 꽤 있다.
자, 이제 이렇게 배경지식을 어느정도 알고 있다는 전제하에. 책의 주요 주제는 표지에서도 나오다시피 "악의 평범성"이라는 것이다. 악의 평범성? 이 키워드를 처음 들었을 때에는 나치즘 시절에 악이 그만큼 평범하게 이루어졌다는 뜻인가? 라고 단편적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책을 다 읽은 뒤, 한나 아렌트의 관점에서 이 문장은 맞지만 틀렸다는 걸 알았다.
한나 아렌트가 말하는 악의 평범성이란, 악행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애초부터 악한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그저 악행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않고(=무사유), 단순히 나치즘과 히틀러의 명령을 따른 것일 뿐이라는 관료주의에 빠져있는 (오늘 말로) 직장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악은 과연 평범한 시민들이 '사유하지 않는다'의 단계를 거치면 저지를 수 있는 것인가? 그들은 악행을 저지르는 것에 대해 외면하면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여기서 '외면한다.'라는 행위가 과연 깊이 생각하지 않고 나온 행위라고 볼 수 있는가?
재판에서, 아돌프 아이히만에게 이런 질문이 들어왔다. "임무와 양심 사이에서 갈등한 적은 없나요?" 그는 이렇게 말했다.
월급을 받고 있는데 지시에 따르지 않았다면, 앙심의 가책을 느꼈을 것이다.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국가가 분열되고 서로 제각기 흩어질 것이다. 공직자의 용기란 조직적인 위계질서이다.
또 질문했다. "자신의 죄를 인정합니까?" 아돌프 아이히만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잘못이 없습니다. 단 한 사람도 내 손으로 죽이지 않았으니까요.
죽이라고 명령하지도 않았습니다. 내 권한이 아니었으니까요.
나는 시키는 것을 그대로 실천한 한 인간이며, 관리였을 뿐입니다.
결국, 홀로코스트의 주요 책임자 중 하나였던 아돌프 아이히만은 끝끝내 자신의 행위가 악행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정말, 600백만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것에 아무런 죄책감도 없었을까? 단지 죄목을 가볍게 받기 위해 했던 거짓말 중 하나였길, 나는 생각했다. 그게 아니라면, 그는 한나 아렌트가 말한 평범한 사람이 가진 사고방식이라 할 수 있는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마무리.

오늘은 간단하게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다루고 있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주제에 대해서만 작성해봤다. 400페이지 분량에서는 아돌프 아이히만이라는 인간이 가진 인간성, 유대인 학살의 사실적인 묘사, 나치즘의 이야기와 그들의 최후까지 자세히 들어가 있다. 전쟁과 학살이라. 대한민국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는 참 멀면서도 요즘엔 그다지 멀지도 않은 듯하다. 21세기에 전쟁이 웬 말이냐는 말도 있지만, 사실 전쟁과 학살은 현재까지도 끝없이 발생되고 있다. 단지, 우리가 그에 관심을 가지지 못할 뿐. 각자 삶 챙기기도 빠듯한데, 그것까지 어떻게 생각하고 다룰 수 있겠는가.
다만,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그건 우리가 이 책을 읽으며 도덕적 책임을 다하고 깊이 사고할 수 있는 사람이기를 확인받고, 나에 대해 확신을 가지며 살아갈 수 있는 용기가 얼마나 귀중한지 알 수 있는 경험 덕분일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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